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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명서] 정부 R&D 제도혁신 방안에 대한 기초과학계의 입장
작성자 (사)한국해양학회 작성일 2023년 9월 25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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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R&D 제도혁신 방안에 대한 기초과학계의 입장
-편견과 졸속으로 마련된 정책으로 담대한 미래를 견인할 수 없다-

 8월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논의를 거쳐 발표한 정부R&D 제도혁신 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가 과학기술계에 큰 충격과 우려를 던져 주었다. 어려운 여건과 힘든 시간 속에서도 정부와 국민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매진해 왔다고 스스로 자부해온 우리 기초과학 연구자들은 이번 정부R&D 제도혁신 방안의 기저에 깔려 있는 원칙과 인식이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름을 통감하면서 그동안 우리의 부족함과 한계에 대해 처절한 후회와 반성을 하며, 앞으로 인류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위해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의 반성과 통찰과는 별개로, 우리는 정부R&D 제도혁신 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편견과 졸속으로는 과학이 미래로 발전해 나갈 수 없다는 우리의 절실한 우려 때문이다.

 이번 발표 내용은 정부의 국정목표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드러냈다.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를 국정목표로 제시하면서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에서 유지하겠다고 약속하였고, 올해 3월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도 5년간 연구개발 부문에 170조를 투자하여 2030년에는 과학기술 5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한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라고는 믿기 힘든 내용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혁신의 필요성으로 제시한 R&D “카르텔’과 ‘나눠먹기’ 등 그릇된 관행은 구체적인 예시가 없는 상황에서 실체를 알 수 없으며, 만약 그러한 문제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관행의 개선을 위한 방안 도출의 근거가 될 수는 있어도 R&D 제도의 근본적인 틀을 통째로 뜯어고치는 논리가 될 수는 없다. R&D 예산 규모의 확대에 따른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있으나, 정부의 재정 운영에서 비효율적인 부분이 한 곳만 있을 수는 없을 터인데 정부 총지출이 증가했음에도 유독 R&D 예산만 큰 폭으로 삭감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재정 운영 비효율성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정부 스스로가 혁신을 하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에 과학기술 R&D, 특히 기초 연구에 그 책임을 떠넘기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을 가지게 된다. 심각한 재정적 위기를 겪으면서도 R&D 투자를 계속 늘려온 것은 과학기술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며 미래라는 굳건한 믿음에 기반하며, 이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식을 같이 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정부 발표로 인해 정부와 과학기술계 사이의 신뢰가 무너졌으며, 그 과정에서 과학기술인의 자부심, 특히 기초과학 연구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정부는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온 과학기술 성과를 ‘쉽게 성공하는 R&D’와 ‘국내에 갇혀있는 R&D’라고 폄하하고, 일부 극소수 연구자의 부적절한 사례를 일반화하여 모든 과학기술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인식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는 어떤 기초과학 연구자가 자긍심을 가지고 과학연구에 매진할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번 정부 발표에서는 신진연구자 지원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그와는 반대로 제도 변경과 예산 삭감의 최대 피해자가 이공계 대학원생과 포스닥 등 학문후속세대가 될 것이며, 그 결과 해외로의 인재 유출이 심각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는 IMF 이후 과학기술인의 위상 추락으로 인하여 나타난 ‘이공계 기피’ 현상 때문에 오랜 기간 우수한 인재 양성에 어려움을 겪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동안 상황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인구감소와 디지털 변혁 등 다른 요인 때문에 과학기술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할 인력의 안정적 수급이 넘어야 할 새로운 도전으로 대두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나온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이 향후 회복하지 못할 상황으로 이어진다면, 과학기술 패권 경쟁에서 인재 양성만이 유일한 희망인 우리에게는 치명타가 될 것이다.

 모든 국가 정책이 마찬가지이겠으나, 특히 교육과 연구와 관련된 정책은 장기적인 안목이 필수적이어서 오랜 숙의를 거쳐서 정해져야 하며, 예측 가능한 제도 운영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정부가 제안하고 있는 R&D 제도혁신의 기본 철학과 전략이 진정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할 것인가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R&D를 R&D답게’ 라는 철학은 구체적인 방향성을 가늠할 수 없는 공허한 캐치프레이즈라고 하겠다. 실제로 제시된 제도혁신 방안은 ‘선택과 집중’, ‘경쟁’, 그리고 ‘글로벌 연대’라는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다. 경쟁 논리에 기반한 선택과 집중을 창의적인 다양성을 추구하는 풀뿌리 지원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효율성을 따지는 것은 철 지난 논쟁으로 여기서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것보다는 의견 수렴과 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소수의 특정 분야와 사업에만 집중 투자를 하는 것과 구조조정과 예산삭감을 빌미로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이권 카르텔’과 ‘나눠먹기’의 원인이 됨을 상기할 때, 정부의 정책이 스스로의 논리를 뒤집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갈라치기’와 ‘생색내기’로 볼 수밖에 없는 지원정책을 강요하는 것으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구축한 연구지원체계를 통해 육성하고 유지해 온 건전한 연구생태계가 무너지게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대중음악과 영화 등의 분야에서 보듯이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단순한 외국과의 연대보다는 우리의 독창성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때 가능하게 된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연구의 수월성을 널리 인정받는 연구자와 분야가 점점 많아지면서 단순히 선진국을 따라가는 연구가 아닌 진정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를 추구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북돋아주고 확장시키기 위한 지원에 정부가 보다 집중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글로벌 연대를 통해서만 초일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과거 fast follower 시대의 것으로, first mover로서 미래를 견인할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동의하기 어렵다. 연구의 글로벌화는 그동안 우리 과학기술 발전의 방향이기도 했고 앞으로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졸속으로 글로벌 연구를 추진하게 되면 주도성을 상실한 글로벌 연구가 될 공산이 크고, 따라서 실속 있는 국제협력 연구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학기술은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한 진리 탐구가 최고의 보편적 가치가 되어야 하며, 일부만을 포함하는 어떤 가치도 과학기술 활동의 목적을 결정할 수 없다. 

이번 정책 발표가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를 포기한 심각한 사태임을 인식하면서 우리는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고 과학 한국의 밝은 미래를 밝혀야 한다는 절실한 심정으로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정부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를 할 때 비로소 가능함을 인정하고, 졸속으로 추진된 정부R&D 제도혁신 방안과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 조정을 원점에서 재고하라 
- 정부는 우리나라 과학기술계가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온 과학기술 성과를 존중하고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과학기술인의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진정성 있는 비전과 실질적인 육성 전략을 제시하라
- 정부는 오랜 기간 지속적인 노력으로 구축된 건전한 연구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일방적인 연구지원체계의 변경을 지양하라
- 정부는 소수의 의견이 아니라 상식적인 모든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 의견을 담아 정책 입안 과정에 반영하도록 보장하라


2023년 9월 25일

기초과학 학회협의체 (기과협)
- 대한수학회
- 한국물리학회
- 대한화학회
- 한국지구과학연합회 (한국우주과학회, 한국기상학회, 한국지구과학회, 한국지질과학협의회, 한국천문학회, 한국해양학회)
-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생물교육학회, 한국동물분류학회, 한국유전학회, 한국환경생물학회, 한국식물분류학회, 한국진화학회)
- 한국통계학회

전국대학 기초과학연구소 연합회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